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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한 낸시 여사…'좋은 시절' 미국 대표한 '좋은 아내' [ USA-Community]
mason (16-03-07 03:03:49, 173.56.89.90)
6일 향년 94세로 별세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는 미국 사회에서 낙관론과 자부심이 가장 컸던 시기를 대표하면서도 남편의 내조를 통해 미국인에게 자리잡은 여성으로 여겨진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를 계기로 정치적 영향력도 행사했고 레이건 전 대통령의 별세 이후에는 공화당의 원로 역할도 했지만, 낸시 여사를 미국인에게 가장 강하게 각인시킨 사건이 남편에 대한 괴한의 암살 시도였기 때문이다.

1921년 뉴욕 시 플러싱에서 태어난 낸시 여사는 배우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대학에서 극예술을 전공했고, 곧바로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낸시 여사의 인생을 결정지은 사건은 1947년 당시 영화배우협회장이던 12세 연상의 로널드 레이건을 만난 일이다.

자신이 공산주의 동조자 명단에 오른 일을 항의하러 레이건을 찾아간 낸시 여사는 곧바로 레이건과 사랑에 빠졌고, 1952년 할리우드에서 결혼했다.

결혼 후 낸시 여사는 배우 생활을 계속하려 했지만 1956년 결국 배우로서의 꿈을 접었고, 대신 레이건 전 대통령의 전 부인 소생을 비롯한 자녀들의 양육에 힘썼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근무할 때는 베트남전 참전군인 돕기 같은 대외 활동을 했고, 결국 레이건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하자 낸시 여사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부인) 재클린 여사 이후 가장 패셔너블한 퍼스트레이디\'로 알려졌다.

낸시 여사는 백악관 생활 초기에 값비싼 식기나 의류, 실내장식을 사들인 일 때문에 \'낸시 여왕님\'으로 불렸지만, 1981년 3월 레이건 전 대통령이 총격을 받고 치료받을 때 헌신적인 간호를 통해 멀어졌던 미국인들의 마음을 돌렸다.

이후 낸시 여사는 레이건 전 대통령을 깊이 사랑하는 좋은 아내의 이미지를 이어갔고, 이는 레이건 전 대통령이 숨진 이후에도 계속됐다.

물론 낸시 여사도 \'아니라고 말하기\'(Just Say No)라는 이름의 마약퇴치 운동이나 자신의 유방암 수술 경험을 살린 유방암 검진 홍보 활동 등 여러 사회 활동을 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부터는 비서실장 인사나 외교정책에 영향을 줬고, 남편의 별세 이후에는 공화당 원로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국인에게 있어 낸시 레이건의 이미지는 대부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행복한 표정으로 함께 있는 아내로서의 존재다.

미국 뉴저지 주 라이더대학의 대통령 부인 연구가 마이라 거틴 교수는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대통령 부인들이 남편에게 헌신했지만, 낸시 레이건에 비교될 만한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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