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에 대처하는 법
Q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어요) 화를 내거나 싸우는 사람을 보면 그 화가 저를 향한 게 아니어도 움츠러들고 상대와 눈 마주치기 무서워집니다. 필요 이상으로 불편하고 동시에 눈치를 보게 됩니다. 화에 대한 기억은 아버지로부터 시작한 것 같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완벽주의적인 경향이 있어 집에서 사소한 청소나 생활습관 문제를 자주 지적하셨습니다. 본인이 계획한 대로 따르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곤 하셨죠. 혼나는 순간에 저는 아무 소리 못 하고 그 화를 그대로 받아야 했던 무기력한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오히려 따뜻하고 정 많은 면모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화내는 사람이란 일단 나쁜 사람, 두려운 사람으로 인식됩니다. 화나 짜증을 내는 사람을 보면 순간 위축되고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불쾌해지곤 합니다. 저는 왜 이럴까요.
A (어릴 적 기억이 투사된 거라는 윤 교수) 화, 분노는 그 자체로 병적인 감정 반응은 절대 아니죠. 분노는 내 마음의 공격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언가 내게 위협이 될 때 분노 반응이 일어나면서 싸울 태세를 갖추게 됩니다. 남이 나를 때리는데도 화가 안 나면 내 공격성을 사용하기가 어렵겠죠. 분노는 나를 지키기 위해 공격 행동을 일으키는 감정 신호입니다. 분노해야 결투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직접적인 결투보다는 법 체계 같은 사회 시스템으로 개인 간의 갈등을 주로 해결합니다. 따라서 분노를 함부로 내보였다가는 이상한 사람이 돼 버립니다. 심하면 법적인 문제도 발생하죠. 그래서 내 분노가 느껴질 때 두려움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외부로 터져 나와 행동으로 나타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발생하는 것이죠.
특히 화가 나는 분노의 대상이 윤리적으로 존경해야 하는 사람일 때 그 두려움은 더 커집니다. 화를 내게 되면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한 것이기에 자신을 용서하기 어렵고, 그 죄책감에 자존감마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화를 내면 안 되는 대표적인 금기의 대상이죠. 그러나 화를 내는 아버지에게 자녀는 분노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자동으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감정 반응이죠. 그러나 아버지이기에 분노를 보인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행동입니다. 그러다 보면 과도하게 분노를 억압하게 됩니다. 너무 누르게 되니 마음 안에 큰 분노가 쌓이고, 그것이 튀어나올까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거죠.
오늘 사연 안에 양가감정, 즉 이중적 감정이 드러나 있습니다. 지나치게 화를 내는 무서운 아버지와 정 많고 따뜻한 아버지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이 뒤섞여 있습니다. 화내는 사람을 나쁘다고 생각하면서도 두렵다고 인식하는 것은 그 아버지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이 투사되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열 받아서 욱하면 결국 손해
Q (바보같이 꾹꾹 속앓이만 해요) 화나 짜증과 같은 감정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저는 다른 사람과 갈등을 느낄 때 그것을 잘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혼자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점점 그 상대가 마음에 안 들게 됩니다. 종종 친구들과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그럴 때면 저 자신도 놀랄 만큼 그 사람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상황이 그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쌓여버린 화가 상황을 사실과 다르게 왜곡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필요 이상으로 소모적인 마음 앓이를 했다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꼈을 때 이를 표현하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A (하루 정도 참는 건 좋다는 윤 교수) 분노는 상대방에 대한 공격입니다. 그래서 분노를 표현하게 되면 관계는 일단 손상됩니다. 그렇다고 그 감정을 그냥 찍어 누르면 분노는 더 진하게 숙성되고 엉뚱한 곳에서 화풀이하게 되죠. 결과적으로 내게 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노를 참으며 억지로 겉으로만 아무 일 없는 척 유지하는 관계도 내게 유익을 줄 것은 없겠죠.
우선 분노가 생기면 하루 정도는 표현하지 않고 내 감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도한 공격 반응이 나와 상대방뿐 아니라 나한테도 손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내 마음 상태가 안 좋아 그냥 지나갈 일에도 화를 낸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 잠만 제대로 못 자도 예민해져 별것 아닌 것에 화를 낼 수 있으니깐요.
하루 이틀, 감정을 지켜보았는데도 상대방에 대한 분노가 지속한다면 고민을 해야 합니다. 저 사람에게 내 분노를 표현할 가치가 있는지를요. 타인에 대한 분노 표출은 나도 다치게 합니다. 어찌 됐던 남을 공격하는 건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은 아니니까요. 화를 내고 그 순간은 시원할지 몰라도 좀 시간이 지나면 찜찜한 마음이 듭니다. 나도 상대방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죠. 그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 사람은 욕먹어도 싸다’며 상대방의 문제점을 더 합리화하게 되는데 이 또한 마음에는 다 일이죠. 마음이 더 지치게 됩니다.
그래도 화낸다면 구체적으로
다시 정리해 보면 일단 화가 나면 하루 정도 지켜보고, 그래도 화가 지속하면 화를 낼 가치가 상대방에게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누군가에게 분노를 표현하는 것은 내 마음도 다치게 하는 일이기에 그럴 가치가 없는 상대라면 그냥 관계를 멀리하는 것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저쪽에서 나를 화나게 했는데 내가 반격해서 화를 내주면 상대방 마음이 편해질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