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위 1%, 이른바 슈퍼리치(super rich, 10억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가진 부유한 사람들)는 요즘 마음이 편치 않다. 가파르게 떨어지는 위안화 환율 때문이다.
시진핑 정부의 반(反)부패 정책과 더불어 중국 미래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면서 이들이 해외로 자금을 빼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들은 몰락하는 도시를 등지고 다른 곳을 개척해 제 2의 성공을 꿈꾸거나, 혹은 위기에 정면 승부를 걸어 생존을 모색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최근 홍콩 대표 부동산재벌인 리카싱 청쿵 그룹 회장이 ‘홍콩 엑소더스(탈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그룹 본사를 영국령 케이맨 제도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콩 1위 부호이자 아시아 최대 부호인 리카싱은 세계 20위 슈퍼리치다. 그의 보유 자산은 1월말 기준 341억달러(약 36조7400억원)다.
그동안 중국에 집중돼 있던 부호들의 돈은 영국 런던의 메이페어와 뉴욕 맨해튼,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미션베이 등의 고급주택으로도 흘러가고 있다.
미국 부동산중개인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해외에서 유입된 부동산 투자자금의 25% 정도는 중국인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주택 구매 평균가는 59만달러(약 6억5000만원)를 웃돈다. 뉴욕의 고급 아파트들은 시장에 매물로 나오기 무섭게 중국 부호들이 사들이고 있는데 대부분 현금구매다. 직접 눈으로 집을 보지않고 구매하거나 가격에 개의치않고 1000만달러(약 101억8000만원)가 넘는 호화아파트까지 사들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들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설득에 나서고 있지만 중국의 취약한 금융 시스템이 해외로의 자금 유출을 부추기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중국 위안화 가치는 지난해 미 달러화에 대해 2.5% 가량 떨어졌다. 올해 역시 1% 가량 하락했다. 미국 달러 강세 탓이지만 중국이 경기하락을 막기 위해 통화 완화 정책을 펴고 있는 것도 배경이다.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고 내수를 부양하기 위한 것이다.
문제는 위안화의 가파른 하락세가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달러에 비해 위안화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 개입을 해왔다. 지금은 개입 자체를 멈췄지만 위안화 가치 하락이 계속되고 있다. 신문은 지금 중국 정부가 (위안화 가치 하락을) 은밀하게 버티고 있거나 아니면 최소한 너무 가파른 절하를 방어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썼다.
위안화는 일본·유럽 등 다른 국가 통화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세지만 달러에 대해서는 약세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불안한 상황을 지켜보는 중국 부호들도 선택권은 많지 않다. 중국 경제 성장 속도가 둔화되면서 자금 시장도 동요하고 있지만 중국법에 따라 개인이 매년 5만달러 이상을 해외로 유출하는 것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슈퍼리치들은 이런 정부 규제를 피할 방법을 갖고 있다. 이들이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4조달러(약 4420조원)에 달하는 외환보유고가 있어도 중국 거부들의 자금 이탈이 계속된다면 이를 방어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도 이를 알고 있다. 그들(중국 정부)은 불사신이 아니라고 신문은 표현했다.
2011년 빅터 시 노스웨스턴 대학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10만명에 달하는 중국 갑부들이 주무를 수 있는 돈은 2조~3조 달러에 달한다. 이는 주식·채권·부동산 등을 합한 금액이다. 이후 중국에서 부의 쏠림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미국이 금리인상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중국 부자들에겐 해외 투자가 더욱 매력적이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위안화 약세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수 밖에 없고 미국 부동산 가치는 더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 갑부가 운영하는 회사들이 운영 자금 대부분을 해외에서 차입해 쓰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 차입금은 약 1조달러 이상이다. 위안화 가치가 하락할수록 해외에 갚아야 할 빚은 더 늘어나는 셈이다.
위안화 가치가 더 큰 폭으로 하락하면 외국 은행들은 이들에게 추가 담보를 요구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갑부들은 현재 보유 자산을 팔아 부채를 갚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이는 결국 외환을 더욱 고갈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재로선 이러한 악순환을 막기 위한 열쇠는 중국 정부가 쥐고 있다. 신문은 중국 정부가 더 이상 급격한 위안화 약세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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