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9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파리 연쇄 테러의 주범들은 최소 2개의 호텔 방과 3대의 차량을 빌린 후 신원을 노출하지 않고 쓸 수 있는 선불카드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에서는 현재 선불카드를 쓰면 익명으로 한 번에 최대 250유로(한화 약 31만원), 1년에 2500유로(한화 약 310만원)까지 결제할 수 있다.
글로벌 테러조직에 속하지 않은 이른바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범)\'가 급증하면서 테러 수행의 핵심 중 하나인 자금조달 수법도 진화하고 있다. 독지가의 기부나 마약밀매 등 범죄수익에 의존하는 고전적인 자금조달 대신 크라우딩펀드나 페이팔 등 최신 금융 및 결제기법이 테러자금 조달 수단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6일 FATF(자금세탁방지기구)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지급결제수단, 천연자원 등이 새로운 테러자금 조달 창구로 주목받고 있다. 새로운 수법은 다양한 방법으로 소액 자금조달 및 세탁이 가능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과거에는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자산가들이 테러범들의 주요 \'돈줄\'이었다면 지금은 SNS를 통해 불특정 다수가 자금조달에 활용되는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13년 독일에서는 요리 레시피(조리법)를 공유하는 평범한 페이스북 그룹에 \"긴급하게 음식과 약품 등이 필요하다\"는 글이 올라왔다. 시리아에서 익명으로 게시된 이 글에는 독일 은행의 계좌번호가 첨부됐고, 모금이 끝난 후 해당 계좌주는 바뀌었다.
또 기존에는 NPO(비영리재단)를 사칭하거나 악용해 테러자금을 모았으나 최근에는 크라우딩펀딩 같은 최첨단 금융기법이 각광 받고 있다. 크라우딩펀드는 인터넷을 통해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투자 혹은 기부의 형식으로 손쉽게 자금을 모으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캐나다에서는 테러를 목적으로 나라를 떠나려 했던 테러범들이 사전에 온라인을 통해 크라우딩펀드를 운영하고 있던 것이 확인됐다.
파리 테러에서 사용돼 주목받은 선불카드는 익명성이라는 장점 외에 직접적인 자금세탁 수단으로도 쓰인다. 테러조직으로부터 기부를 요청받은 개인들이 온라인이나 모바일을 통해 국제선불카드를 구입한 후 SNS로 카드번호를 보내주면 다시 이를 저가에 팔아 현금화해서 테러조직에 보내는 식이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도 테러범들이 눈독 들이는 자금조달 수법 중 하나다. 지난 8월 미국의 한 10대 소년은 트위터를 통해 7000건이 넘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로 IS(이슬람국가)에 돈을 보내자고 선동하는 등 테러조직을 도운 혐의로 11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지급결제수단 중 하나인 페이팔도 계좌를 통해 현금화 및 타계좌로 이체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자금조달 경로로 이용되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의 한 구호단체가 200만 유로의 기부금을 모았는데 이중 60만 유로는 페이팔 계좌를 통해 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최근에는 원유나 천연가스, 광물 등의 천연자원을 이용한 자금세탁도 눈에 띈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 관계자는 \"테러에 참여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면서 신금융 및 기술을 이용한 자금세탁 수법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며 \"특히 크라우딩펀딩 등은 소액자금을 쉽게 끌어모을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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