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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한국식 치킨으로 전 세계를 날다 [ Business]
mason (15-10-13 04:10:18, 72.80.49.170)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등 해외 유수언론이 미국을 휩쓸고 있는 ‘한국식 치킨’ 열풍을 소개하고 있는 가운데 그 중심에 선 인물이 바로 본촌인터내셔날 서진덕 대표다.
미국.필리핀.태국.인도네시아.싱가포르.캄보디아 7개국(한국 포함)에서 151개 매장을 운영하는 글로벌기업가인 서진덕 대표는 20년 전만 해도 90만원 월세내기도 빠듯할 정도로 장사가 잘 안된 적도 있었다. 서 대표는 군 복무를 마치고 26살의 젊은 나이에 고모부가 운영하던 ‘현풍할매집곰탕’에서 매니져로 일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지배인 생활 일년이 채 안돼 곰탕집이 아닌 닭갈비집을 차리며 독립했다.
곰탕집 지배인에서 닭갈비집 창업으로
“그 당시에는 내가 독립해서 문만 열면 장사가 다 잘 되는 줄 알았어요. 어떻게해서 뭘 팔겠다 이런 고민도 없었죠. 현풍할매집에서는 그냥 아침에 문만 열면 손님들이 들어오니까, 제가 장사를 잘 하는 줄 알았죠.” 준비없이 독립한 대가는 컸다.
하루종일 많이 팔면 5만원 정도였다. 독립하면 돈을 왕창 벌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아무런 준비가 없었으니, 장사가 안될 수 밖에 없었다.
신생 대학가 주변을 선점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심만 있었던 젊은 서진덕은 그때를 계기로 목표를 정하고 나면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이것은 서 대표 필생의 사업철학으로 이어진다. 그래도 자동차 판매원 등 하루 투 잡을 뛰면서…16시간씩 닭갈비 집으로 출근해 밤 12시까지 장사를 했고, 다행히 일본에서 불고기가게를 하던 지인이 ‘소스’의 중요성을 꼬집으면서 그에게 맛있는 닭갈비 소스비법을 전수해 주었다. 탁월한 소스맛이 더 해지면서 서 대표의 닭갈비집은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점점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음식점이 인기를 끌자 욕심이 생긴 그는 또 다른 도전을 꿈꿨다. 뉴질랜드에서 닭갈비 장사를 계획한 것이다. 큰 애가 6개월 때, 아내랑 뉴질랜드로 이민, 닭갈비 장사를 하려 했는데 결국 실패하고 1년 만에 돌아왔다. 이 때 지금의 본촌인터내셔날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본촌치킨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닭은 닭인데, 닭갈비가 아닌 닭튀김으로 선회하게 된 것이다.
치킨집 차려 소스개발에 전념
2002년, 부산 해운대의 10평 남짓한 가게에 ‘본촌치킨’ 간판을 달고 본격적인 치킨소스 연구에 매진했다. 바삭하게 치킨을 튀기고, 그 치킨에 잘 어울리는 소스가 무엇인지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8년간이나 닭갈비집을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가 있었지만, 막상 치킨집을 운영해 수익을 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소스 때문에 들쑥날쑥한 치킨맛은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소스개발을 하느라 그 당시 1억3000만원을 2년만에 다 말아먹었다. 그러면서도 치킨소스가 가장 맛있게 발리는 면적이 있어 닭의 사이즈까지 연구하는 끈기를 보였다. 그렇게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만들어진 그의 치킨은 바삭한 껍질에 특제소스를 입히는 특징을 갖게 됐다. 달콤하고 짭조름한(Soy Garlic) 혹은 매콤한(Hot) 소스는 본촌치킨 브랜드 고유의 맛으로 정착하게 된다. 서 대표는 쉬지 않고 각 가맹점을 돌며 소스맛을 점검했다. 하루 18시간씩 운전하면서, 25개 정도 되는 점포를 혼자 다녔다.
한창 자리를 잡아가던 사업에 고전을 면치 못할 일이 생겼다. 2003년 조류독감 파동으로 치킨요리가 대중들에게 외면을 받은 것이다. 2004년 경남 양산에서 폐사한 닭 1만 마리가 조류독감으로 뒤늦게 밝혀졌고, 이후 118만 1818마리의 조류(닭, 오리 등)가 폐사 되거나 살처분 됐다. 닭값이 폭등했고, 치킨집들은 널뛰기를 거듭했다. 서대표는 사실 포화 상태인 한국의 치킨 시장에서 이겨낼 자신이 없어서 외국으로 도망쳤다고 표현한다. 본촌치킨이 한국내에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무렵, 서 대표는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해외진출을 결심했다.
미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에 앞서 서 대표는 꼼꼼한 사전준비를 했다. 그는 본촌의 핵심경쟁력인 ‘소스맛’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며 ‘현지 시장 공략’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뉴욕주 플러싱을 비롯, 여러 곳에 매장을 오픈하며, 2006년 미국에 들어가 소스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직접 발품팔아 다니고, 수시로 소스를 납품하는 매장들을 왔다갔다하면서 관리했다. 매일 10마일이상을 걸어다녔다. 맨해튼 42번가에 가면 터미널에서 버스타고 또 지하철 타고....대표는 그가 제공하는 본촌소스가 발라져 나오는 치킨이 제 맛이 나는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그처럼 지독하게 발품을 팔았다.
마크 저커버그의 입맛을 사로잡다
맛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그의 고집스러움은 당장 가시적인 성과는 내지 못했지만, 맛집 전문블로그와 SNS를 통해 소문이 퍼지면서 꾸준히 고객층을 늘렸다. 드디어 현지인들의 입소문을 타게 된 것. 2007년 본촌치킨 매장은 미국 북동부지역을 중심으로 버지니아, 뉴저지, 뉴욕 등에 6개의 매장을 더 늘렸다.
서 대표의 이같은 경영기법은 미국 컬럼비아대학 비즈니스스쿨의 케이스스터디 사례로 소개되고 학생들의 시험문제로까지 출제되는 유명세를 치렀다. 물론, 본촌치킨의 인기비결은 단연 맛이다. 서 대표에 의하면 페이스북과 구글 본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본촌치킨 서니베일 지점에는 마크 저커버그도 찾는다. 저커버그가 오기 1시간 전쯤 수행원들이 테이블을 점령한다. “치킨과 어떤 음식을 조합하면 궁합이 맞을까 고민을 많이했어요. 밥이랑 치킨 조합도 생각해보고 빵이랑 치킨 조합도 실험해봤죠. 지금은 직장인들도 점심에 본촌매장에 많이 와서 평일 점심이 엄청 붐빕니다. 이렇게 점심메뉴 정착시키는데만 3년이 걸렸어요.” 서 대표는 현지 소비자에 대한 시장조사에도 적극적이었다.
철저한 사전조사로 미국시장서 인정받아
본촌치킨은 수시로 메뉴개발을 위한 회의를 한다. 현지에 진출할 때는 치킨 이외에도 20여 가지의 옵션을 보여주고, 사업이 될만한 아이템으로 골라서 개발한다. 그 결과 주요 품목인 치킨을 제외하고도 각 나라별로 특이한 메뉴들이 인기를 끌었다. 서 대표에 따르면, 치킨을 제외한 메뉴로 인도네시아는 컵비빔밥, 미국은 떡볶이, 필리핀은 잡채가 잘나간다. 올해 본촌치킨은 바레인, 미얀마, 베트남, 호주, 뉴질랜드 등 새로운 국가에 진출할 예정이다. 2013년 서 대표는 해외에서의 인기를 토대로 처음 사업을 시작한 부산에 본촌치킨 해운대점을 오픈했다. 그에게 부산바다는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 겪으며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을 같이한 추억이 깃든 장소다.
“저는 부산이 참 좋아요. 2002년 이 사업하면서 처음 부산에 내려왔거든요. 힘들 때 이 바다를 보면요 콱 트이는 느낌. 그걸 못 잊어서 서울이나 대구로 안가고 다시 부산으로 온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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