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생활용품 체인점인 무인양품의 가나이 마사아키(59.사진) 회장은 명함을 재활용지로 만들었다. 건네받은 명함을 책상에 올려놓고 입김을 훅 불면 반대편으로 날아갈 정도로 가벼웠다.
명함을 구석구석 돌려보며 만지작거리니 금세 구김이 생겼다. 새하얗고 빳빳한 다른 회사의 최고경영자(CEO) 명함과 비교해보면 두께는 절반 수준. 명함에서조차 간소함을 강조하는 무인양품의 철학이 응축된 느낌이었다.
일본이 호황기를 맞이하던 1980년. 무인양품은 일본 대형 유통기업인 세이유(西友)가 과도한 상업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프라이빗브랜드(PB) 프로젝트로 출발한 회사다.
너도나도 화려한 마케팅 기법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던 거품 경제의 한복판에서, 무인양품은 \'이유 있는 싼 제품\'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생활용품을 팔기 시작했다. \'무인양품(無印良品.MUJI)\'이라는 회사 이름도 \'브랜드(印)가 없는 좋은 제품\'이라는 뜻이다.
경기 침체기에 오히려 승승장구했던 무인양품은 1989년 세이유에서 독립했다. 1995년 주식 상장을 거쳐 지금은 28개국에서 매출 3000억엔(약 3조원)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급성장에 따른 후유증으로 2000년대 초반 첫 적자를 기록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도 실적이 급격히 나빠지는 등 여러 차례 위기도 겪었다. 그러나 브랜드도, 마케팅도, 디자인도 없는 무인양품 특유의 경영 방은 위기마다 조금씩 진화하며 성장과 생존의 버팀목이 됐다.
가나이 회장은 세이유에 입사해 1993년부터 무인양품에서 일했다. 2008년 대표이사가 됐고 2015년 5월부터 회장직을 맡고 있다.